1990년대 통신 방법
지금의 우리는 인터넷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잠자는 일 빼고 모든 생활이 인터넷 안에서 일어납니다.
현재는 5G 통신 환경에서 자유롭게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통신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소통을 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PC통신
기억하십니까? 이름부터 추억이 된 PC통신.
지금의 5G 통신 환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답답하고 느린 통신 방법이지만, 그 당시 PC통신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PC통신은 전화 회선을 사용하는 통신으로 주로 모뎀이라는 것을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PC통신, 모뎀 오랜만에 참 반가운 이름들입니다.
PC통신은 전화 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PC통신 중에는 집전화(유선전화)가 계속 통화 중인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누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면 계속 통화 중이기 때문에 전화 사용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통신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 전화 요금이 엄청 나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PC통신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떠올려보니 초기에는 일종의 게시판 형태의 자료실 이용을 주로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화방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PC통신 많이 하신 분들은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실 겁니다.
전송 속도는 당연히 지금처럼 빠르지 못했습니다. 100MB 파일 하나 내려받겠다고 몇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송 중에 통신이 끊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는데요, 지금처럼 이어받기도 안 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또 몇 시간을 내려받아야 하는 불행도 자주 겪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100MB 파일 용량이 엄청 우습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플로피 디스크 1장에 저장 가능한 최대 용량이 100MB가 안되었습니다. 지금은 흔한 기가바이트(GB)나 테라바이트(TB) 단위는 있는지도 모르고 살 때입니다. 과거의 저장 방식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PC통신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서비스가 천리안, 하이텔이 있었고요, 그 후 서비스가 확대되고 나우누리, 유니텔 같은 여러 사업자가 생겼습니다. 역시 또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90년 후반에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깔리면서 PC통신은 점차 사라집니다. 라이코스, 야후를 통해 검색 엔진을 접하게 되었고, 2000년부터는 포털사이트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참고 : 통신 서비스 이용 변화]
1980년대 중. 후반 : 천리안, 하이텔
1990년대 중반 : 나우누리, 유니텔
1990년대 후반 :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구축/설치로 PC통신 사라짐
2000년 : 포털사이트 시대가 시작됨
CHECK!!
인터넷은 전세계 무수히 많은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통신망입니다.
이렇게 연결된 컴퓨터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공유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WWW(월드 와이드 웹)의 탄생입니다.
웹이라 부르는 기술은 HTTP, HTML, URL 같은 인터넷 브라우저 기술을 말하는 것이고 인터넷은 웹을 포함하여 확장된 범위의 다양한 컴퓨터 통신을 뜻합니다.
웹(WWW), 이메일, 스트리밍, 게임, 모바일APP... 등이 모두 인터넷 서비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인터넷 ≠ 웹 같은 말이 아닙니다.
무선호출기 삐삐
1990년대 또 다른 추억, 전화기가 아닌 소통 수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성의 정점이라고 자신하여 말할 수 있는 무선호출기 삐삐입니다.
이 작은 단말기기가 사람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했었고, 수신만 가능했던 삐삐이지만 아주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잠을 잘 때에도 혹여나 연락이 온 것을 모를까 봐 손에 쥐고 자거나, 속옷에 꼽고 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숫자 표시만 가능했기 때문에 숫자를 이용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했었는데요.
17175='일찍일찍 와', 1010235='열열히 사모', 5825='오빠미워', 981= '굿바이' 이렇게 말입니다. 메시지 음성 녹음도 할 수 있었는데요, 음성사서함에 들어가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 고백 많이들 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삐삐 인사말을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좋은 배경 음악 깔고 목소리 연기하면서 인사말을 녹음했었던 기억 다들 있으실 겁니다. 므흣한 옛날 추억에 감성이 말랑말랑 해집니다.
지금은 SNS로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지만, 그 시절에는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는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선택하고 하고 싶은 말이나 감정을 인사말로 녹음하여 당시의 내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알렸습니다. 지금처럼 '좋아요', '공감'을 누를 수는 없지만 나의 취향이나 성향 및 상태를 알리고 공감을 얻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낸 문화로 보입니다.
삐삐는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언제든지 호출 신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화기만 있으면 즉시 호출한 사람과 연락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시절 커피숖에 가면 테이블마다 있었던 것이 유선전화기입니다. 연락하고 싶은 사람에게 커피숖 번호로 호출을 하면 호출을 받은 사람은 삐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 때의 커다란 문화였습니다. 학생들도 삐삐를 사용했었고, 학교 쉬는 시간에는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서 줄 서기를 하였지요, 그 줄에 저도 서있었고 아마 여러분도 서있었을 겁니다.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걸 당시에 상상이나 했었을까요?
그러다가 삐삐 역시 1990년 후반에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PCS폰이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PCS
PCS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시티폰을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시티폰은 삐삐에서 PCS폰(또는 휴대폰)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잠깐 등장했던 폰입니다. 삐삐로 받은 호출번호를 시티폰을 사용해 전화를 걸었는데요, 시티폰은 전화를 걸기만 되고 받을 수는 없는 발신만 가능한 기기인 데다가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 때문에 사용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공중전화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에 장점이 없었던 것입니다.
셀룰러폰(휴대폰)의 앞번호가 011, 017 이었다면, PCS폰은 016, 018, 019 번호를 사용했습니다. PCS가 휴대폰에 비해 저렴한 가격정책으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인기가 높았습니다. 휴대폰과 PCS 광고 경쟁이 엄청 치열했었고 유명 연예인, 유행어 이슈가 많았습니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 "짜장면 시키신 분~~",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잘 자. 내 꿈 꿔~", "여~보~세~요~" 수많은 광고 문구들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다 추억 속에 잠겼고 2G, 3G.... 휴대 전화기는 스마트폰으로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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